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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묘일기9

너는 네 생각만 하지, 나도 네 생각만 해. 가끔 그런 생각을 해. 아니 사실 자주 하는 것 같아. 사랑이란 무엇일까. 나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사랑다운 사랑은 너에 대한 것이 아닐까. 나의 잠보다 너의 잠을 걱정하며 지새우는 밤이 늘어가는 것. 나의 건강보다 네 건강을 걱정하며 속을 태우는 날이 늘어가는 것. 나의 애정이 너에게 부담이 될까 껴안고 싶은 마음을 견디며 바라만 보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살살 쓰다듬어 보는 것. 어떻게 네가 내게 온 걸까. 생각하다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감사해지는 것.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졌을까 원망하다가도 너도 내게 왔음을 떠올리게 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것. 그러다가 네가 없는 것을 상상하게 되면 주책맞게 눈물이 비집고 나오는 것. 넌 내게 한마디 말도.. 2022. 11. 20.
길고양이는 영어로 뭐라고 할까? 내 대학 동기는 가족과 함께 이사 간 시골 마을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앞에는 물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있는 마을에서 고양이 몇 마리를 모시면서. 그곳에서 오랜 시간 함께 한 반려견을 보낸 후 상실감에 젖어 있을 때 뱃속에 아이들을 품은 길고양이가 집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품고 보내주고 또 거두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고양이 대가족의 집사가 되어 있었다. 친구와 통화하다 보면 고양이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게 된다. 수다 중에도 보채는 아이 잠을 재우고 밥을 챙기고 수화기 너머 들리는 남의 고양이 울음에 전해지지 않을 대답도 한번 건네 본다. 통화 중에 온갖 딴 짓을 해도 제재하고나 기분 나빠하는 이가 없다. 강아지만 키워와 고양이를 낯설어 하던 친구는 이제 초보 집사의 티를.. 2022. 10. 31.
고양이가 나를 키운다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을 시작하며 생긴 가장 큰 변화는 길 위의 고양이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언제나, 어디에나 있어왔던 아이들인데 마치 없었던 것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 마냥 가는 곳마다 그 아이들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한 존재를 마음에 들이는 것은 그 종(種, species)을 마음에 품게 되는 일이 아닐까. 둥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나에게 없던 세계가 열린 듯하다. 길 위에서 마주치는 모든 존재를 쓰다듬고 안아주고 품어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마음이 유난히 아린 날에는 잠든 아이 몰래 곳간을 털고 나와 밤 산책을 나서 본다. 나오기 전에는 괜히 잘 자는 아이 한 번 쓰다듬어 주며 ' 또 사줄게, 괜찮지? 고마워.'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속삭인다. 사료와 물 뿐이지만, 하루의 .. 2022. 10. 29.
식혜 먹은 고양이 속 고양이가 등장하는 속담이나 관용어구는 참 귀엽다. 오늘 발견한 귀여운 속담 하나. 식혜 먹은 고양이 속. 훔쳐 먹어 놓고 슬금슬금 눈치 볼 고양이를 상상하니 귀여움에 심장이 아파온다. 그렇다고 우리 애가 잘못해 놓고 눈치를 보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좀체 잘못을 하는 일이 없기도 하지만 이왕 할 때는 눈치 따윈 보지 않는다. 캣폴 위에서 자고 있는 집사 위로 착지한다던가 베란다나 다용도실 같은 출입금지 장소에 들어간다던가 하는 것. 충전기나 이어폰 선을 망가뜨려놓는 것도. 그런 일을 해놓고 당당하기 그지없다. 제 잘못을 덮을 생각도 없는 저 당당한 자태. 심지어 사건 현장에서 태평하게 잠을 청하는 뻔뻔함까지. 그래 놓고는 이상한 데서 눈치를 볼 때가 있다. 밥 먹다가 눈치보기, 물 마시다 눈치보기. .. 2022.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