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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묘일기

고양이가 나를 키운다

by 둥이집사 2022. 10. 29.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을 시작하며 생긴 가장 큰 변화는 길 위의 고양이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언제나, 어디에나 있어왔던 아이들인데 마치 없었던 것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 마냥 가는 곳마다 그 아이들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한 존재를 마음에 들이는 것은 그 종(種, species)을 마음에 품게 되는 일이 아닐까. 둥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나에게 없던 세계가 열린 듯하다.

 

 

길 위에서 마주치는 모든 존재를 쓰다듬고 안아주고 품어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마음이 유난히 아린 날에는 잠든 아이 몰래 곳간을 털고 나와 밤 산책을 나서 본다. 나오기 전에는 괜히 잘 자는 아이 한 번 쓰다듬어 주며 ' 또 사줄게, 괜찮지? 고마워.'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속삭인다.

귀여운고양이

 

사료와 물 뿐이지만, 하루의 끝이 너무 외롭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건네본다. 오늘 하루가 고단하지 않았기를, 내일도 평안하기를, 또 만날 수 있기를, 부디 오래 볼 수 있기를.

자주 보였던 아이가  어느 날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날에는 그저 더 좋은 곳으로 옮겨갔겠거니, 제멋대로 생각해버리기로 했다. 전에는 걱정하고 동정하느라 밤잠을 설쳤는데 어느 날 내가 그 아이들의 삶을 동정할 존재인가 의문이 들었다.

 

 

제 삶을 기꺼이 살아내고 있는 그들을 동정의 시선으로 보는 것도 참 오만하다. 그들의 삶을 고단하게 만드는 것도 동정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혐오하는 것도 결국 다 인간이다. 어쩌면 생태계에 가장 큰 민폐가 아닐까. 무튼 고양이에 대한 나의 애정은 모든 존재에 대한 애정과 부채감으로 이어져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 고양이는 나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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